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어보고 모두들 대한민국을 뼈저리게 그리워 하거든요

“광주 어느 산골길에서 피란민들이 모여서 애국가를 불렀다거든요. 아니 그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하는 것 말고 ‘동해물과 백두산’을 말요. 그럴 수가 있느냐구요. 있다마다 뿐입니까. 백성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오늘날과 같이 불타오른 건 일찍 없었을 것입니다. 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어보고 모두들 대한민국을 뼈저리게 그리워 하거든요.…”(김성칠 지음·정병준 해제, 앞의 책, 190쪽).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더 정확하게는 https://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74 : 인공(인민공화국)치하 90일 간 서울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진실로 그러하다! 다시금 겪어 보아야만 깨닫는 무지가 우리 가운데 횡행하고 있다.



내용 추가 : 앞의 링크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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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빼앗겨 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

불문학도 손 선생, 자칭 회색분자로서 “대한민국에 그다지 충성을 바치지 않았고, 그 결과 언제든 한번은 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날이 오려니 하고 예견했던” 서울대 사학과의 김성칠 교수는 적 치하를 경험하며 개인의 자유를 빼앗기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대한민국과 그 체제가 제공한 ‘자유’를 갈망하고 그리워한다.

그 전까지는 일제의 입제에 신음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서자 실망이 커서 이남에 대한 반발심이 이북에 대한 동경으로 변했다. 이북의 활발한 선전공작이 주효하여 지식인, 학자, 언론인의 정신이 불그레해졌다. 그들은 불그레해진 정신으로 신생 국가로서 모든 것이 미흡하고 부족하고 허점투성이였던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알고 보니 그 미흡하고 부족하고 허점투성이 대한민국이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제공한 고마운 존재였음을 인공 치하를 경험하며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제공하는 ‘자유’는 그저 물과 공기, 산소 이런 것처럼 날 때부터 거저 얻은 것이라 믿고 있다. 때로는 그 자유가 지나쳐 자유민주 체제와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자유의 소중함을 아무리 목이 쉬어라 설명해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빼앗겨 봐야 그 절실함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이란 짐승들의 심리구조인가 싶어 세상이 허허롭다. 그런 수준의 인간들이라면 축생이나 견생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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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7/10 12:05 # 답글

    당시에는 공산주의가 옳았을지 모르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죠. 월남자가 월북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지 않습니까?
  • Xerx 2019/07/11 00:40 #

    아닙니다. 글의 이야기는 당시에도 공산주의가 틀려먹었다 - 좋은 이야기로 선동을 했으나 그 실체는 죽음의 길이었고, 이를 경험한 서울 시민들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지식인들 조차도 '대한민국을 뼈저리게 그리워 했다'라는 뜻입니다.
    공산주의는 옳은 적이 없습니다. 전 세계 지식인 층이 공산주의에 열광했던 때에도 공산 혁명의 실체는 거대한 거짓 가운데에 유지되는 체제였습니다.
    이승만은 그러한 시기에 '공산주의의 당부당'이라는 논문으로써 그 핵심 문제점과 미래를 예견했고, 이는 90년대에 들어와 적중하였습니다.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7/11 01:50 #

    김일성이 지상낙원을 건설할 때 괴뢰반동학살자 이승만은 거지와 미군위안부가 우글대는 미제 식민지를 만들었었죠. 한국이 이북보다 살기 좋아진 건 박정희 이후부터입니다.
  • Xerx 2019/07/18 01:32 #

    아닙니다.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로서 박헌영과의 경쟁 구도 가운데 소련에게 '발탁'된 인물이었으며, 57년까지 중국과 소련의 당적을 정리하지 못한 - 진정한 괴뢰입니다. 북한이야 말로 소련의, 공산주의의 식민지라고 보아야 하며, 일제로 부터 해방은 되었는데 오히려 더 철저한 압제와 학정에 놓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거지와 위안부 - 몸 밖에는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우글댔던 대한민국은 이후 성장을 거듭하여 북한의 생지옥에 비한다면 더할나위 없는 지상낙원으로 변모하여 있습니다. 이러한 번영의 배경에 한미동맹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그 한미동맹을 이룩한 최대의 단일 요소가 이승만이라는 개인임을 부정하는 미국인은 없습니다. 더욱이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직접 이승만을 평하여 "그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이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데 어떠한 위협이나 난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지도자로 추앙받게 된 분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허수아비 지도자가 결코 아니었다." 라고 쓰고 있으며, "그는 반공주의자이며, 반식민주의자"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승만을 괴뢰라 칭할 수는 없으며, 해방공간 당시 사회 전반에 체계적 조직을 뻗친 공산주의 진영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승만의 업적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그것이 비난 받아야 한다면 공산주의 진영의 기만전술과 민간인 사이에 숨어 그들을 방패로 삼는 빨치산들의 행태, 이러한 내부적 전쟁에서의 패배가 불러올 민간인의 희생과 같은 요소들과의 형량 가운데에서 고찰 되어야 합니다.
    한국군의 증강과 현대화, 장교들의 미국 유학을 통해 한국군을 당시 국내 조직 가운데 최고 수준의 행정 엘리트로 성장시킨 것 또한 이승만의 업적입니다. 그러한 기회를 누린 사람 중에는 박정희도 포함됩니다. 한국이 이북보다 살기 좋아지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인재들의 역할이 필요했는데, 토지개혁을 통해 모든 국민이 '내 자식은 공부시킨다'의 길을 열었던 사람, 의무교육제도를 통해 문맹률을 기적적으로 낮춘 지도자, 우수한 인재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내면서 그 가슴에 애국심과 조국 부흥의 비전을 심을 수 있었던 사람이 고령의 대통령 이승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북한은 거지와 군위안부가 우글대는 나라, 여자는 몸이 팔리고 남자는 장기가 뜯겨 팔릴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어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업적을 그 인민의 삶이 말 해 주고 있습니다.
  • 한일군사정보협정파기 2019/07/18 02:37 #

    이승만 때는 이북이 살기 좋았다니까요...
  • Xerx 2019/07/18 03:24 #

    아닙니다. 산업 / 경제 / 지하자원 측면에서 이북이 유리했으며, 소득 수준도 이북이 높았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만 그 소득 수준은 개개인의 소득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북한에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과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없습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또한 집단농장으로 전환되는 중간과정이었기에 농민들은 사기를 맞은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유재산 소유, 주거 이전, 언론과 사상 등 대한민국이 자유를 보장하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북한은 자유를 인정하지 않거나 형식적 및 기만적 보장에 그쳤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던 회색분자 - 이런 미숙한 국가보다는 이북이 낫지 않겠나 생각하던 - 서울대 사학과 교수가 6.25를 맞아 인민군 남진 및 서울 점령을 환영했으나, 막상 겪고 보니 인민공화국에 없는 자유가 대한민국에 있었음을 깨닫고서 '대한민국이 제공하던 그 자유가 "살기 좋음"에 얼마나 귀중한 요소인가, 살기 좋아보이지만 자유가 없는 이북 체제 하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경험하고서 '대한민국을 그리워 했으며, 머리위로 떨어지는 미군의 폭격을 볼 떄 적개심이 아니라 일종의 구원의 소망을 느꼈다'라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유'가 없으면, 학살을 문제시 하는 목소리가 더욱 학살 당하기에 학살이 일상이 되고 학살이 더이상 사회문제로 떠오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북이 그러하였고, 결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지요. 현재도 그렇습니다.
  • 한일군사정보협정파기 2019/07/18 05:04 #

    학살은 미군과 이승만이 더 심했어요.
  • 한일군사정보협정파기 2019/07/18 06:12 #

    이승만 괴뢰반동의 민중학살 자료입니다.
    http://qindex.info/i.php?f=2019
  • Xerx 2019/07/18 14:09 #

    아닙니다. '남한'에 거주하는 한국 민간인 - 을 살상한 것을 "학살"이라고 넓-게 정의한다고 해도, 미군-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살상된 인명에 비해 북한의 침입으로 인해 살상된 '남한 거주 한국인 민간인'의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이승만이 전격적으로 석방하여 목숨을 살린 반공포로의 존재(반공포로만 3만5천명인데, 이들 중 2만 7천의 목숨을 살립니다)가 그것을 짐작케 해 줍니다. 북한 정권에 의해 '북한'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살상된 숫자는 어찌 가늠해볼 자료가 있는지 조차도 알기 힘듭니다.

    하여, 다시 한번 '자국 정부에 의해 자행된 - 위협이 되지 못하는 자국 민중의 살상'을 학살이라 정의할 때, 이를 북한과 남한사이에 제대로 비교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인 데다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남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국가적 학살이 여전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남북 인민이 누렸던 자유의 정도 / 공산주의 국가의 태동기에 벌어지는 계급 학살 / 현재의 학살 상황을 볼 때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한다면 북한에서는 매우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학살이 일어났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글에서도 인민재판으로 제대로 된 판결 없이 총살되는 사람들을 보고 (피난을 가지 않고 남은, 좌익 성향의) 서울주민들이 기겁을 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많이 죽였는가의 문제보다 누가 많이 살렸는가의 문제로 시각을 돌린다면, 단연코 미국과 이승만이 이룩한 남한의 자유민주체제가 현저히 더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저항능력이 없는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으로 공포를 조장하여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면 이것은 악한 의도 가운데 벌어진 고의적 '학살'이지만 - 북한의 경우가 그러하기에, 학살의 생존자는 체제에 껄끄러운 존재겠지요 -,
    민간인 살상 행위가 자유민주를 성립시키기 위한, 공산주의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1종 오류(즉, 실제적 위협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는데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었을 경우)라면 그것은 '학살'이라 불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공고히 성립한 자유민주체제에서 생존자들이 끊임없이 위로받고 보호받는 상황이 뒤따라야 이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인데, 지금 우리 나라 상황을 볼 때 그러한 판단을 하기에 부족함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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