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쟈고랴
by Xe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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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take it as given.

성묘를 다녀오는길에 조막조막한 논들을 보았다.


아직 황금물결을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논에 빼곡하게 벼들이 자라고 있었더랬다.
그 논을 일군 농부들은 그러한 풍경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까. 송편을 입에 물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했다.


농부들은 잘 자라준 벼가 기특할 것이고 그동안의 날씨에 고마워할 것이고, 작년의 흉작과 더불어 지난 날의 고생을 보답받을 것이다. 이를 기뻐하며 추석을 맞이할 것이고, 그들이 먹는 송편의 맛은 내가 입에 물고 있는 이 송편의 맛과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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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것으로 받아 들인다


학문에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take it as given)'라는 개념이 있다. 문제의 분석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운 부분을 무시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고려치 않을 때 쓰는 기술인데.


경제학에서는 가격 수용자(price taker)라는 개념이 대표적인 예이다.
시장에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여서 거래를 한다.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가격이 결정되는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수요공급 곡선의 교점에서 균형가격이 결정된다.... 라는 이야기이다.


그 상호작용은 복잡하다. 시장에서 쌀 반가마가 9만원에 거래된다는 사실은 생산자가 이미 꽤나 남겨 먹으면서 소비자는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쌀에 만족하는 지점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의 균형이다.

이 과정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발생하는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시장을 생각한다.


=================================================================== 왈자 rules


쌀 시장이 열린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여든다.
이제 소비자들을 방 하나에 몰아넣고, 생산자들을 다른 방 하나에 몰아 넣는다. 방은 철저히 격리되어 있는데, 컴퓨터가 한대가 놓여있을 따름이다.
이 방을 중재하는 그림자 같은 사람 하나가 이 두 방을 내려다 보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를 왈라스 경매자(Walrasian auctioneer)라고 한다. 왈자라고 부르자.


처음에, 왈자가 하나의 가격을 컴퓨터에 입력한다. 각 방의 컴퓨터에 이 가격이 표시된다. 소비자와 생산자는 요 가격을 보고 아 그러면 이정도 사면 되겠다 / 팔면 되겠다 라고 맘을 정한다. 이것의 총 합이 시장수요량시장공급량이 된다.
왈자는 위에서 시장수요량과 시장공급량을 내려다보고, 그것에 기반해서 가격을 조정한다.


시장 수요량이 시장 공급량을 초과하면 살짝 가격을 높여서 다시 각 방에 표시한다
시장 공급량이 시장 수요량을 초과하면 살짝 가격을 낮추어서 다시 각 방에 표시하게끔 한다.


소비자와 생산자는 이 하늘에서 내려온 가격 변화에 깜짝 놀라서 다시 행동을 바꾼다.
이 왈자는 무사 공평하게 위의 작업을 수행한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좀 줄어들고 공급이 늘어나는 규칙성에 의존하여,
어느 순간 시장 수요량이 시장 공급량과 정확히 같아지는 가격에 도달 할 것이다. 왈자는 결론을 내리고, 최종 보고를 한다. '자 균형 가격을 받아라!'


그러면 이제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소비자와 생산자는 균형가격에 거래를 시작한다. 수요량과 공급량은 정확히 일치하고 시장은 청산(clearing)된다.


=================================================================== 가격수용자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가정은 가격수용자의 가정이다. '가격'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소비자와 생산자는 순순히 왈자가 부른 가격에 맞추어 움직인다는 뜻인데,


쉽게 말하면 각 소비자 생산자가 '나는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거래에 참여한다는 이야기이다.
독점자, 혹은 큰손과 같은 인물은 자신이 생산량을 좀 줄이면, / 시장에서 힘 좀 써서 물건을 사들이면, -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가격수용자가 아니다.


경제학에서 많이 나오는 완전경쟁시장의 가장 중요한 가정이 저것이다. 완전경쟁시장에는 독점자나 큰 손이 없다. 사람들은 모두 소시민적 생산/소비생활을 하는 것이다.


큰 손이 없는 시장이 있는가? 글쎄, 내 생각에는 학교 앞 김밥가게 정도가 적절한 예가 아닐까 한다. 김밥 가격이 낮아지는 순간을 위해 거액의 투기 자금을 유지하면서 억지로 김밥을 덜 먹고있는 학우가 있다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고, 경제계의 거물 장마담이 김밥의 수급에 장난을 쳐서 거액을 챙기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현실의 시장에서는 사람들 간의 전략적 행태가 치열하게 나타난다. 돈이 도는 과정에서는 - 내가 이렇게 하면 시장은 이렇게 반응을 하겠지, 저렇게 하면 저렇게 반응을 하겠지. 정말 그렇네? 틀렸네? - 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게다가 자동차, 컴퓨터, 석유, 곡물 같은 뭔가 좀 중요한 시장에서는 소수의 생산자나 금융계의 큰손이 시장이 마구 뒤흔드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지 않은가. 이런 시장에 완전경쟁의 가정을 잘못 적용하는 순간, 우리는 독점자들의 횡포를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가격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적 과정의 결과라고 보는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경제학의 저런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크게 비판하게 된다. 이 태도는, 시장의 '큰손'이 경제이론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데에 악용될 위험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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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생각의 방향을 바깥으로 향해보자. 우리들은 삶을 살면서, 주어진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없는가? 만일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받는 비판처럼,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반성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봄에 나가 밭에 씨를 뿌리고, 비료와 거름을 주면, 가을에 추수할 열매가 맺힌다 - 이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결실이다. 그야말로 우리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첫번째의 것이다. 또 이 열매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의 손을 거쳐 시장에 이른다. 우리는 돈을 쥐고 시장에 나가 값을 치르면, 이를 사 먹을 수 있다. - 이런 사실을, 우리는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현재의 교환 경제를 떠 받치고 있는 근간이 되는 믿음이다.


농부에게, 논과 밭의 산출은 그야말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는 태풍도 병충해도 가뭄도 홍수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농부는 '봄에 나가 씨를 뿌리고, 비료와 거름을 주면 가을에 추수할 열매가 맺힌다'라는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사이에는 무수한 변수가 있고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 내야만 '열매가 맺힌다'.


그 차이가 '감사'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심으면 자란다는 사실, 자라면 먹을 수 있는 것이 맺힌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농부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무엇인가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 시장에 나가서 값을 치루었을때 자신의 요구가 만족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것에 조금이라도 미달 되는 것은 불만과 클레임의 대상이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이전 세대의 아이들은 갤러그같은 게임에 그리 즐거워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생일날 갤러그를 선물했다간 어이가 없어서 웃겠지. 우리는 그동안 왜 이리 불행해졌는가?' 하는 흐름과 비슷한 맥락의 생각이 든다.


시장이 발달하고 삶이 풍요로워져 가면서, 사람들은 점점 시장 반대편에 그러그러한 변수들의 조화가 있었기에 시장 이쪽 편에서 이러이러한 풍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 알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와 동시에 예전에 감사하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개의 볍씨를 심어 수십개의 이삭이 달린다는 다행스러운 사실을, 실질 이자율이 1보다 큰 이 세계를 난 왜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일까... 감사할 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기쁠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인데, 얼마나 억울한 삶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억울해지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집에 도착. 차에서 내리니, 배부르다고 남겨뒀던 송편이 다 쉬어 있었다.

by Xerx | 2008/09/15 16:1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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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리데 at 2008/09/18 02:30
무뎅 핸드폰 끊었냐.
이제 연락방법은
집주변 고성방가 뿐이냐.
Commented by xerx at 2008/09/18 20:53
지금 고성방가가 들리는데 저거 너인거냐
이렇게 연락하는게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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