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2.

아, 들어가기 전에 하나 이야기해 둘것은, 기업조직에 관해서는 아는게 없는지라, 그쪽 이야기에 있어서 혼선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할것.


#2. 신입사원.


아버지의 첫 직장은 삼성 제일모직. 아아. 두근두근.

그때 제일합섬의 한 공장이 놀고 있었더랬다. 아버지께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시느라 공장을 휘 돌던 중에 그 노는 공장을 보시고 의아. ‘이거 왜 놀고 있는 겁니까?’ 라는 질문에 ‘단가가 안 맞아서 생산 하는 대로 손해라 돌리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더라. 투자는 다 해놓고 직원도 있는데, 수출부 쪽에서 수주를 받아와도 타산이 맞지 않아 공장은 놀고 있고, 기계들의 감가상각은 계속되고, 수출부 부장은 사장에게 왜 수주 못받아 오냐고 죽어라 깨지고 있는 상황이랬다.

아버진 공장을 도시고 뭔가 잡히셨던지, 한번 자신이 직접원가회계로 견적을 뽑아보고 싶어졌다고 하셨다. 잘 모르지만, 이 방법은 그때 당시 최신이론으로, 연세대에 대출 다닐 적에 새 책들을 뒤적이시다가 공부한 녀석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소속은 마케팅부. 그러니까 그때는 마케팅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있을 때였다. 이건 당시 부서 위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는데, 안쪽 깊숙하게 좋은 자리에 경리부, 반대 방향 깊숙하게 영업부?판매부?, 그리고 한참 부서들이 있고 한중간 통로에 딱 붙어서 마케팅부, 런 식이다. 뭐 하여간, 마케팅부 하는 일이 왜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지를 분석해서 자문? 해주는 것이라, 오오. 이 일에 딱 맞구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경리과에다가 그 공장 자료요구를 하셨다고 한다. 당시 입사 1년차. 정확히는 입사하신지 4개월.

당시 경리과는 범접 불능의 엘리트 모임이라, 어디 딴 과에서 자료를 요구를 하는 적이 없었는데 그깟 마케팅의 햇병아리 사원이 자료를 달라고 요구를 하니, 이게 어디 먹일 일인가. 가차없이 퇴짜. 마케팅부의 실장도 세상모르는 신입사원을 별로 달갑게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이쿠, 사내 회의때에 일이 시작되었으니,

원래 사원들을 회의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어떻게 마케팅쪽 사람들은 회의에 들어가는게 가능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회의에서 이러이러해서 그 공장의 회계를 뽑아보고 싶습니다. 라고 의견을 냈고 그 당시 어떤 과장, 그러나 이병철씨 사촌이 되는 어떤 사람에게 오케이가 떨어졌다고 한다. 과장 정도는 별게 아닌데, 이병철씨 권력이 권력인지라, 마케팅부 아버지의 책상 - 그러니까 통로바로 옆 마케팅부실의 최 문간방 책상 - 에 5~6년치 데이터가 두둑히 쌓였다고 한다.

경리부장의 밥 축에도 못들었던 마케팅부라, 이런 일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면 비상이 걸린다. 부 전체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속에서 아버지는 그 주산 실력으로 계산을 해나가셨다고 하는데, 이게 또 멋졌던 것이 아버지 책상이 정말 문만 열어놓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보고 지나가는 책상이라, 경리부장이고 누구고 지나가면서 아버지 책상의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뭐하고 했다던가.

맘이 급해진건 실장. 신입사원의 휘하에 몇 명의 선배를 붙여 줬다고 한다. 그 사람들을 향하여 신입 말한다. ‘당신은 이거 이렇게 해 주시고, 이쪽은 이거 해주시고-’
당시 일을 회상하시던 아버지는 ‘으하하하, 이건 전-무 후무한 일이야’하면서 유쾌해 하셨더랬다.

원래 신입사원이 하는 일은 복사기 돌리고 커피를 타고 하는 일인데, 당시는 복사기가 어디 있는가, 손으로 베껴쓰기 바쁘다. 삼성은 그나마 최신 기업이라 ‘청사진’을 찍어서 문서 복사를 했다더라. 기계에 종이가 말려 들어가면 물이 척척하게 젖은 청사진이 떠 나오는 그 과정이 최첨단이었고, 신입사원에겐 황송한 일이었다나. 그러나 그런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버지는 휘하에 몇 명 선배를 달고 2달동안 계산에만 전념하셨다 한다.

당시 아버지 회계의 핵심은, 매몰비용sunken cost이었는데, 공장에 투자를 다해놓고 사원들 돈 다 주고 하는 부분은 그냥 버린 비용으로 쳐 버리고, 손익을 계산하는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간단한 개념이지만 당시는 장사치들만 갖고 있던 생각이었던지, 그게 최신이론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간단하다. 100원 들여 과일을 사왔는데 이걸 70원에 살 사람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안 팔아 썩어 없어지면 100원이 손해고, 70원에 팔면 30원만 손해를 보면 된다. 직접원가회계는 - 나는 모르겠지만 - 이러한 상황을 ‘100원 손해볼걸 70원만 손해보는 것은 이익이라 보아도 무방하므로 파는게 낫다’라는 결과물을 내놓는 회계법이라 한다.

그렇게 계산이 끝나고,

결론은:  ‘30% 이익이 나기 때문에, 공장을 돌려야 한다.’

....앗싸아;


A4 편철지 20매 정도에 이러한 리포트를 쓰고는 아버지는 실장에게 결제를 요구한다.
실장은 다시금 전전긍긍. ‘이거 맞는거냐?’ ‘맞습니다’ '여기 이건 무슨 뜻이냐?' '이러이러 해서 그렇게 됩니다' ‘...으응... 그래... 근데 이거 맞는거냐?’ ‘맞다니까요’ 하기를 일주일. 적잖이 불안했나보다. 그사람.
실장의 손을 떠난 아버지의 보고서는 부장의 손에, 상무의 손에, 끝내 사장의 손에 들어갔다.

사장, 아버지를 부른다.

‘자네 이 보고서 내용 설명해 보게’

아버진 어안이 벙벙한 중에 위의 내용을 설명. 듣던 도중에 사장이 서류를 탁 덮던 장면이 기억에 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다시 사장의 콜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선 자리는 과장과 부장, 전무와 상무, 사장이 자리를 가득 메운 회의장이었더랬다. 들어서는 순간 등뒤에 땀이 쫙 흐르는데, 사장은 보고서 내용의 프리젠테이션을 요구했고, 아버진 꽁꽁 얼어붙은 채로 보고를 시작했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사장의 말에 따라 아버진 회의장을 나오셨는데, 그 후에 회의가 끝나고 경리부장이 마케팅부의 1년차 아버지를 불러 호통을 쳤다.

‘그런 일은 나를 거쳐서 올라갔어야지!’
하고 날아가는 아버지의 보고서.
원래는 잽싸게 달려가 서류를 받아들고 다시 책상에 올려놓은 것이 정석인 이 상황에서, 아버진 욱하고 화가 치밀어, 가만히 선채로 붉으락 푸르락 하는 부장의 얼굴을 감상 하셨다고 한다; [........아아. 아버지, 젊으십니다; 아직 어머니 못 만나신 때겠죠 아마; 만나셨어도 첫째 현정이 누나가 아직 세상에 안나온 때겠죠 아마;]
그때 어떤 여 사원이 재빨리 서류를 원위치. 했던 사건을 기억하시는 아버지. 그렇게 그 자리는 붉으락 푸르락 하게 끝이 났다.

그날 퇴근시에, 수출부에서 ‘저녁 먹읍시다’ 제의가 들어왔더랬다. 아아. 왠일인지 진수성찬.

수출부장이 이야기를 한다.



# 오운상씨, 오늘 회의에서 사장님이 무슨 말씀 하셨는지 아세요?
% 아니요;
#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가장 엘리트가 모인 곳이 어딥니까.]
-......삼성입니다.
[그럼, 그 삼성에서 가장 엘리트만 뽑아놓은 회사는 어디입니까.]
-...... 제일모직입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3백산업에 목숨걸고 있던 상황이다. 아; 세월;)
[그럼, 그 제일모직에서 또 가장 엘리트만 모아놓은 부서가 어디입니까]
-...... 경리부입니다.
[...... 경리부에서 이제껏 몇 년 동안 안된다고 하던 일을, 마케팅부 1년차 사원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쪽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아. 드라마다. 눈물 줄줄;


아버지 덕분에 수출부는 정말 '살아난' 터라, 이후로도 수십번 거하게 얻어먹으셨단다. 

그렇게 돌아간 공장이 제대로 실적도 올려주고 해서 아버지의 주가는 급상승.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뒤에 경리부장도 아버지를 불러서 - 아버지의 표현을 빌면 - 코가 삐뚤어 질 때까지 마시면서 감정을 풀어주었다고.

그렇게 1년을 채우자마자 아버진 경리부로 발령을 받으셨다.


데뷔가 이런지라, 아버진 정말 원 없이, ‘마음껏’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초고속 승진 노선에 타셨다고 한다. 새파란 아버지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아버지의 직장생활은: 부하직원들이 말하길 ‘부장님처럼만 직장생활 할 수 있으면 정말 재밌게 살텐데 말입니다.’라고 할 정도라고. 내가 아는 바로 아버진 감사 팀장?까지 지내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강조하셨던 부분이니, 아마도 이 직책이 가장 높이 올라가셨던 때인듯.



뭐, 아마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계셨으면 지금쯤은 사장하고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하시더니, 어머니, 입을 삐죽. 그럴만도 그럴만도. 우후우 -_-
맞아요 엄마. 저도 마치 금방 맞은 로또가 막 물을 내리던 변기에 빠져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OTL



/ 여기까지가 우리집의 상승일로.
이제 쓸 이야기들은 우리집의 악화일로.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내가 이런 일련의 일들을 바라볼 때는 '아 하나님이 정말 이 집을 이렇게 이끌어 가셨구나;'의 시각을 갖게 되는데,

음. 읽는 분들에게 바라기는, 이런 시선을 의식해 주면서 읽어주길... 하고 있음.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물론 신앙의 관점에서 행운(내 표현으로는 은혜;_^_)에 힘입은 아버지의 석세스 스토리로 볼 수 있겠지만,

이후의 이야기들은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completely 잃어버린 우리집이 대체 10년을 넘는 기간동안(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해, 여의도에서 동숭동으로 이사를 갔던 사건이 첫단추였다) 어떻게 굴러갔는지 - 그것도 4남매 모두가 대학까지 다니고, 두명을 시집까지 보냈는지; - 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들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밤이 늦었으므로, 계속은 나중에. 아마 다음주에 부모님 이야기를 더 듣고 정리해서 쓰게 될 듯 하다.

덧글

  • 친절한수세미 2006/01/09 12:52 # 답글

    재밌게 읽고있어. 근데 매몰비용효과는 공식명칭이 sunk cost로알고있긴한데; (sunken cost는 미네랄 125-_-라는 느낌이 강해서) 어차피 영어로 동의어니 상관없나
  • 친절한수세미 2006/01/09 12:56 # 답글

    아, 하나덧붙여 주산1급은 10자리수의 덧셈능력이라기보단 한자리수의 사칙연산을 20ms내로 처리하고 10자리수를 단기암기할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 뭐 쓸데없는 딴지.
    .... 근데 공부는 안하시나요? -_-
  • Xerx 2006/01/09 15:44 # 삭제 답글

    1. ...맞아. 생각해보니 sunk도 과거분사로군.하고 생각해보니 책에는100% sunk cost로군. 난 어째서 저걸 실시간으로 바꿔치기 하고 있었던거지?; 당신말대로 스타의 영향인가 OTL
    2. 아. 그리고 주산 잘하는 사람들은 손이 빠른게 아닐걸; 내가 알기론 급이 올라갈수록 '머릿속 주판;'을 튀기는데 익숙해진다던데. 음. 손이빠른사람, 머리빠른사람 두 계열로 나뉘려나 -_-;
    3. 음. 사소한 거는 신경쓰지 말게나. [구우의 표정을 짓는다]
  • dasony 2006/01/09 23:49 # 삭제 답글

    모든 부모님은 존경스럽다. [아직 존경스러울 일 반의 반의 반도 안나온거 같긴하지만]
    나중에 우리도 우리 애들한테 저런 얘기 들을라나 모르겠네.
    .... 근데 공부는 안해? -_-
  • Xerx 2006/01/12 17:46 # 삭제 답글

    '우리 아버지는 변태에요'만 안들으면 선방[.....]
    네; 합니다; 한다니까요; OTL
  • emailer 2006/01/12 21:44 # 답글

    사소한건 신경쓰지 말게나 라는 대사.. 너무 오랫만이잖아!!!!
  • JM 2006/01/13 00:19 # 삭제 답글

    난 젤 부러운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버지 존경하는 애들인데. 그럴 수 있다는거 좋은거야. 음음..
댓글 입력 영역